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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취업 이야기

연봉 2천 직장인이 연봉 1억 3천 직장인이 되기까지 - 6탄

by BenShin 2021. 2. 21.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한국회사)

 

미국에서의 첫직장의 계약 조건 : 연봉은 4만불, 자동차 3개월지원,

3개월 지원, 비자비용 지원, 일 년에2주 한국으로 휴가 및 비자 갱신,

일년에 왕복 1번 한국행 비행기 티켓 지원,

영주권은 스폰은 지원 하지만 금전적 지원은 안함,

점심값 지원 안함, 주 6일근무, 연차휴가 3.

사실 3개월 까지는 지출이 거의 없겠지만,

3개월 이후 부터는 남는게 없습니다.

우선 세금은 연봉의 30%정도 이고, 아파트 렌트비는 $800,

차를 사면 한달 $300~$400 대출금 납부, 점심값 하루 $8(한달 $200).

당시 실제 남는 돈은 한달에 약 $500 정도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돈은진짜 아무것도 안했을 경우입니다.

(뭐라도 사는 달에는 마이너스였지요)

미국에서의 2년동안은 금전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좋은 날이 올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냥 희망 고문이었어요)

한국에 있을때는 밤새 일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장 셧다운 기간만 되면,

거의 10일중에 3일을 밤샘 일을 했고,

4 정도는 밤12까지 일을 했습니다.

(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네요. 이걸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 생각하면 회사 사람들이 준비를 많이 안했던것 같습니다.

준비만 제대로 했었더라면 밤새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회사 사람들은 밤새 일하면

다 해결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었습니다.

(몸으로 때우며 일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완전 막노동이죠)

내가 막내라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보다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습니다.

(물론, 연봉은 제일 적게 받고요)

그래도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에게 배운것이 아니라

스스로 습득하 법을 배웠습니다.

1년 8 개원정도 됐을 무렵 회사는 두개로 나눠졌습니다.

두 개로나눠질 당시 직원은 5명 이었는데,

그중 2명이 나가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저는 그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남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남은 회사 직원은 3명 이었고,

그중에서 PLC 프로그램을 할수있는 사람은 저 혼자 였습니다.

2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향수병에 걸리고,

미국에 온것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보다 열악한 업무환경, 적은 연봉,

 그리고 영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한국 사람들하고만 일을 해서 전혀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정도면 누구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거에요)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초심도 점점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미국에 2년이나 살았는데 영어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겁이나 돌아 갈수가 없었습니다.

(캐나다 있을땐 돌아갈 자신이라도 있었지만, 이때는 그 자신도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초심을 잡아서

목표를 영어와 업무 능력 향상으로 설정 했습니다.

두가자만 잘한다면 어디든 이직 할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뭐든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영어 공부는 틈틈히 조금씩 했습니다.

그리고 연봉이 부당하다고 생각 되어 연봉 협상을 진행 하였습니다.

(직원이 3명밖에 남지 않아서 그나마 협상이 가능했던 것 같네요)

협상의 결과는 연봉6만불, 숙소 지원, 점심밥 지원,

주말이나 빨간날에 일하면 대체 휴가 사용 그리고 주 5일 근무 였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했어야 됐었지만, 이것조차 누리지 못했었어요)

미국에 온지 2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원하는것을 조금 얻고 나니 마음에 여유를 찾아 오기 시작했고,

 업무에 집중 할수 가 있었습니다.

이때 부터 미친듯이 목표를 위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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